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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빛으로 그림그리기(test ver.)

RomanticPanic 2017.10.19 06:25


Live action light painting // TECH:TEST from Anssi Määttä on Vimeo.


위에 영상을 보고, 나도 한번 만들어 볼까. 해서 연습삼아 만든 영상입니다.
일단은 연습삼아 만들었기 때문에 매우 초라할뿐만 아니라.. 음악도 없습니다.(..)
이 이후에는 퀄리티를 조금더 살리던가 아니면 좀더 색다른 방법으로 만들 예정....인데 언제 올릴지는 모릅니다 ㅋ
이번 영상은 혼자 찍고 혼자 출연하고 혼자 작업...해서 매우 스피드한 작업이었습니다. 뭐 솔직히 할것도 없었지만요.
카메라는 일단 제가 거지라서(...) 가지고 있는 갤럭시노트로 촬영해서 노이즈가 많습니다.

근데 괜히 위에 영상 올렸나봐요. 내꺼 부셔버리고 싶다......... 소, 손발이 오그라든다!!!!! 그러고보니 영상 색보정도 안했네요.(..)

[Test Ver.] right, light, write. from RomanticPanic on Vimeo.


 

 




test video_1 from RomanticPanic on Vimeo.

 

 

 

 

2012.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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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시는 죽지 않는다.

RomanticPanic 2017.10.19 06:25

우리는 시를 노래하고 있다.
이제는 시집을 사는 사람들이 시인들 밖에 없다며 많은 문학인들이 시의 죽음을 이야기 하곤 한다. 그래서 어려운 시를 쉽게 대중적으로 만들자는 노력도 주변에서 많이 나오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시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 한다. 하지만 나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시는 죽지 않는다.’
시(poem).
백과사전에서 시를 찾아보면 중간정도 부근에 ‘서정시(lyric)란 어원적으로 음악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라도 나와있다. 순간 이것을 본 순간, 나는 ‘아. 맞아’라고 생각하며 사전을 찾아보게 되었다. 여기서 조금 더 깊이 들어가자면, lyric(서정시)의 유래는 리라라는 고대 그리스의 악기로 이어진다. 시의 영향력이 매우 컸던 고대 그리스. 그 당시를 살펴본다면, 그 당시에는 리라의 반주에 맞추어 시 낭송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리라 외에도 많은 악기들이 연주를 하였지만, 리라가 많이 쓰여 그것이 어원이 되어 lyric이 되었다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잠깐, 근데 이 모양새는 마치 우리가 여행을 가서 기타를 치며 노래 부르는 것과 매우 비슷해 보이지 않는가? 다시 말하자면, 시를 낭송하는 것은 당시부터 ‘노래’의 모습을 띄고 있으며, 노래의 노랫말은 당시의 ‘시’였다는 것이다. 다들 어느정도는 알고 있지 않은가, 시에는 음악적 요소가 있더라고...
한마디로 우리는 시를 낭송하고 있었던 것이다. 가끔씩 우리는 이적이나, 레이지본 혹은 다른 가수들의 가사들을 보며 시적이라고 이야기 하고들 한다. 아니다. 나는 그들이 시를 쓰고 낭송을 했던 거라고 생각한다.
시는 죽어가고 있지 않다. 다만, 시가 보는 것에서 듣는 것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그래서 electric six의 gay bar는 신난다. 모닝콜로 쓰고 있는데 아침마다 상쾌하다.


상쾌하다.












가 아니라, 시는 죽지 않는다. 우리는 시를 노래하고 이미 소비하고 있으므로.
詩라는 글자의 어원도 단순하게 언어의 집이 아닌 다른 해석을 들었었는데, 까먹어서 오늘은 여기까지(인데 아마 다음은 없을듯)... 그때 들은 바로는 대충 말(言)과 의미를 뜻해서 뭐 생각한대로 내뱉는 말인가... 그랬었는데...



덧(덧글보고 추가요) 우리는 이미 새로운 시의 형태를 듣고 있다. 물론 시에서 파생된 것들은 다양한 분야로 셀수 없이 뻗어가 그것을 우리가 소비하고 있지만, 나는 노래야 말로 시의 원형을 가장 잘 유지한 형태라고 생각한다. 고대 그리스로 따지면 현대의 우리는 시낭송을 소비하고 있는 것이며 이것은 시의 죽음이 아닌 새로운 도약이라고 생각한다. 엄청 오래된 도약이지만....

덧2, 아무생각없이 지른 이 뻘글이 왜 이렇게 핫한가 봤더니, 이글루스 트위터에 링크가 되어 있군요. 걍 아무생각없이 지른글을 밸리발행한 제 책임도 있으니, 이렇게 된거, 이 포스팅을 완벽하게 만듭시다! 이글루스사람들이여, 저에게 힘을 주세요!

 

 

 

 

 

2012.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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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타워야경

RomanticPanic 2017.10.19 06:24

 


디카 배터리가 다 나가서 급히 들고 있던 갤노트로 촬영했어요.
중간에 한번씩 타워 안에 불들 모두 꺼주는데, 정말 땅에 별이 떠 있는 듯한 느낌이었죠.
길다란 차들의 줄은 은하수처럼 보이고, 하늘은 그 어둠속에서 또 푸른 빛이 언뜻 언뜻 보였어요.
땅의 불빛들이 다 꺼지면 밤하늘이 저런 모양이라는데, 사람들이 밤하늘은 본따 땅에 그림을 그린것 같은 느낌이네요.

 

 

 

 

 

..............

 

2012.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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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가는 느림의 미학

RomanticPanic 2017.10.19 06:21

요즘 들어 더 확실하게 느낀다.
세상은 너무나도 자극적으로 변해가고 있다.
미래를 바꿔나갈 아이들부터 변했다. 세상을 지탱해줄 어른들도 변했다.
세상 사람들은 누구나 다, 거짓말을 한다는 것을 어른들은 알고 있었다. 또한, 거의 모든 소문은 과장되었다는 것들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3명이상이 똑같은 말을 하면 그 이야기는 진실이 된다고. 속아 넘어간 사람들 사이에, 우리는 그것들을 진실로, 또한 희망을 바라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우리는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말았다.
세상은 소문에 의해 변해갔고, 소문은 항상 사람들의 시선을 받기 위해 자극적으로 변해갔다.
소소한 기쁨을 느낄 새도 없이, 빠른 정보와 빠른 이야기들로 세상은 다시 채워졌고, 우리는 이야기를 셀 수 없이, 소비해 나갔다.
느림의 미학.
그것을 우리는 잊어가고 있었다. 우리는 멀티태스킹에 길들여져, 더 빠르게 많은 일들을 동시에 해야 했으니까.
그래서 우리는 또 무언가에 열광하는지도 모른다. 열광하는 하나의 무엇을, 그 순간만큼은 그것을 재대로 즐기기 위해 우리는 모든 것을 손에서 내려놓고 있으니까.
그래서, 우리가 그동안 감동이라는 것을 풍부하게 느끼고, 그 여운에 가슴아파할 시간을 가지게 되니까. 그래서 우리는 열광하는지도 모른다.
순식간에 무언가를 해결하고 눈을 돌려야 되는 이 바쁜 사회에서는 느끼기 힘든 감동의 시간이니까.
하지만 이러한 감정들을 우리가 열광하는 것들에 심어 길들이려고 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에 너무나도 슬픔을 느낀다.
세상은 돌고 돌아, 결국 우리에게 소비만을 강요하고 있으니까.
우리는 충분히 어떠한 감정을 생산해내고, 즐길줄을 아는 사람들인데, 변해가는 세상에, 변해가는 사람들에, 너무나도 이질감을 느낀다.

 

 

2012.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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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끔씩 세상에서 가장 창조적인 녀석들은 과학자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들은 우리가 평소에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것들에서 아이디어를 내기 때문이다. 그들중 일부는 어떤 것에 대해서 다시 바라보는 일들을 한다. 맛도 다시보고, 감촉도 다시 느끼며, 그것의 소리도 다시 듣는다. 그것은 순수한 어린아이의 상태로 돌아가 최초의 처녀적 감각(virgin sensibility)을 느끼는 것과 똑같은 행위이다.(백지의 상태에서 처녀적 감각(최초의 감각)으로 새로운 희열을 느끼는 것이다.)
마치 알베르 카뮈의 ‘창작이란 예술적 미로를 거쳐 한때 그의 가슴을 최초로 열어주었던 두세 개의 위대한 이미지를 찾는 여정’이라는 말을 그대로 따르는 것 같다.
또한 옛 동양의 현인들의 ‘동심을 잃지 말라’라는 말과도 간접적으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관찰이란 무엇인가?
어떠한 것을 듣고, 만지고, 맛보고, 냄새를 맡으며 어떤 형태의 정보를 한데 묶어 버리는 것이다. 이런 감각기관의 정보를 통해 이해하는 것이 바로 관찰이며 어떤 지식의 기초이자, 새로운 길을 여는 수단이 될 수가 있다. 물론 이러한 감각기관의 관찰이 모든 지식의 기초가 될 수 없으며, 모든 관찰의 방향이 될 수는 없다. 하지만 페스탈로치는 이러한 방식으로 아이슈타인이라는 위대한 과학자를 탄생시키기도 했다.


그렇다면 예술이란 무엇인가?
관습에 도전하여 새로운 것들을 창조하는 것이다. 물론 이것도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현대의 예술은 관습에 도전하는 것이 마치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물론 유행이 아닐수도 있다. 원래 그렇게 생각했던 자들도 있으니까) 이런 관습의 도전은 항상 새로운 시선을 필요로 하게 된다.



새로운 시선을 가지려면 앞에서도 나온 백지상태에서의 처녀적 감각을 필요로 하는데, 그것들을 가장 잘하는(혹은 잘해야하는) 녀석들이 과학자이다. 물론 그것이 감성이나, 다른 무언가로 표출되지 않고 이론이나 기계적인 것들로 표출되긴 하지만 나는 가끔씩 생각한다.
가장 순수하게 태고적 감성과 상상력을 가진 녀석들은 과학자가 아닐까 하고              



그들은 가장 창조적인 예술에 근접해 있으니까.



















.. 아님 말고

 

 

 

 

2011.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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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고립

RomanticPanic 2017.10.19 06:18

이야기의 고립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구비문학의 종언은 이야기의 고립을 불러왔다.


이는 지금의 우리 사회가 그 동안 이어져 내려왔던 오랜 지혜들을 쇠퇴시켰다라고도 할 수 있다.
인쇄술의 등장을 통해 산문 예술의 발달했지만, 그동안 있었던 보고(報告)된 경험과 자신의 경험을 혼합시켜 하나의 삶의 지혜라고까지 불렸던 구비문학이 인쇄술의 등장으로 그 명맥이 끊어져 버리고 있으니까...
옛날에 할아버지, 할머니가 들려주셨던 재미난 이야기들은 이젠 책으로 밖에 남지 않았고, 그 책이란 것은 어떠한 지혜도 새롭게 계승하지 못한 체, 현재와 과거의 소통없이 스스로의 세계로 분리시켜버렸다.



덕분에(당연히) 책은 스스로 고독해져갔고, 작가는 그 고독을 업으로 삼았다.



또한 근대사회에 들어서며 유행하게 된 ‘고발’이라는 재밌는 제도의 발달은 이야기를 내면의 문학으로 이끄는데 매우 커다란 공헌을 하였다. 이는 스스로 고독해진 ‘이야기(=책)’에 딱 알맞은 선택지었고, 덕분에 이야기는 더욱더 고독해져갔다.
결국 자아를 찾는 것이 유행이 되어버린 시대(역설적이게도 유행에 저항하는 차별주의의 욕구가 반영된 것이 자아인데도)에 화석처럼 종이에 굳은 ‘이야기’는 단지 현상을 ‘기술’하는 것에 그친 일방적인 소통으로 전락해 버렸다.
사실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내면적 고발의 문학은 사실성이 중요했고, 그 결과 당연히 이야기는 사실주의의 길로 걸어 간 것이다. 때문에 내면적 고발의 문학은 독자들에게 구체적이고 세세한 느낌까지 책을 통해 전해줄 수 있었지만, 반대로 과거에 있었던 간결하면서도 쉽게 공감대로 이끄는 옛 구비문학의 맛은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이는 사실 많은 글쟁이들이 생각하는 완벽에 가까운 문학이었는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구비문학은 대단한 예술의 장르 중 하나이다.
‘화자’와 ‘청자’가 서로의 의견을 주고 받고 계승되는 그 과정에서 소멸되고 생성되는 중간중간의 작은 이야기들(혹은 애드리브)은 사회풍자, 계몽에서부터 또 다른 장르로의 변화까지 매우 다양한 모습을 만들어 낸다. 이는 20세기 후반부터 전 세계를 유행하기 시작한 포스트모더니즘과도 매우 그 모양새가 흡사하다.
구비문학은 세상에서 가장 가까이에 있는 일상이자, 변화무쌍한 예술이기도 했으니까.
그런데 그런 구비문학은 이제 사라졌다. 세상에서 찾아보기가 너무나도 힘들다.
이야기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현재와 과거의 소통이 사라진 이야기는 고여있는 물과도 같다. 고립된 이야기. 책에 있는 이야기는 정보를 일방적으로 전달하고 있을 뿐이다. 5년, 10년, 세월이 흐르며 점점 고립되는 이야기들. 이 답답한 고립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는 걸까...



덧, 물론 리메이크라던지, 패러디같은 것들로 과거와 현재의 소통이 있긴 하다. 하지만 그것도 곧 고여있게 되는 것이 아닐까.




=그냥 저냥 다른 이야기=

지식을 인터넷에서 찾는 이 시대에선 사람들이 점점 생각하는 힘을 잃어가고 있다.
가끔씩 ‘생각’이라는 것을 하여 의견을 내 놓아도 그건 보통의 사회이슈 몇가지 뿐이다.
지식의 보고(寶庫)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인터넷은 결국 사람들의 단순한 생각까지도 물어보는 바보들의 ‘보고’ 또 보는 바보의 장이 되어버렸다.
생각하는 힘이 약해진 사람들은 선정적인 것들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더 이상 추억을 노래하지 않는다. 흥미를 끄는 이야깃거리나 TV를 보며 쾌락만을 찾는다. 이 시대에 ‘생각하는 이야기’들은 점점 힘을 잃고 있다.

why? 왜? 일상속에서 그 물음 하나만 던져도 되는데 말이다...
사실 이는 수 많은 커뮤니케이션의 과포화상태에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사람과 사람. TV. 인터넷... 커뮤니케이션의 포화 속에서 우리는 일일이 생각할 시간이 없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유래가 없던 커뮤니케이션의 과포화의 시대. 생각할 것들은 너무 많은 데, 생각할 시간은 별로 없는 암울한 시대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덧2, 물론 고여있는 이야기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고여 있어야, 발효되어야 하는 이야기들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덧3, 멍청한 머리덕택에 말하고자 하는 것들이 반에 반도 안나온 것 같다..



=이 멍청한 블로그 주인장의 말보다 그냥 참고해서 보면 좋은 책들=
노에 게이치,<<이야기의 철학>>,한국마케팅연구소,2009

박찬국,<<해체와 창조의 철학자, 니체>>,동녘,2001

 

 

2011.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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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각하는 양다리...

RomanticPanic 2017.10.19 06:18

내 생각엔,


양다리는 일종의 닫힌 성적 도착증이다.
자신의 성적요구를 한 여자에게 표출할 수 없으니 다른 여자를 만나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관계는 각 여자들마다 남자가 하는 행동이 차이가 있다. 어떤 여자에게는 조금 더 모성애를 느낄 수 있도록.
어떤 여자에게는 조금 더 멋진 터프한 남성으로 느낄 수 있도록... 뭐 이래저래 다양하게 말이다.



만약 여기서 한 여자를 선택해 결혼으로 골인을 한다면, 그것은 올바르지 못한, 속내를 감추고 사는 약간 불편한 부부생활이 되지 않을까.

훗날, 어떤 사건으로 마음이 트는 일이 발생하지 않는 한...


아마 내 생각으론 이 부부생활은 마음이 트는 일이 끝내 발생하지 않으면 남자는 다시 자신의 다른 욕구를 표출시킬 다른 여자를 만나러 어딘가로 사라질 것 같다.
한 사람에게는 '수많은' 내가 그 안에 존재하고 있다. 그 수많은 나에겐 '수많은' 욕구가 존재하는데, 결혼 전까지의 그 큰 두 욕구가(혹은 여럿)충돌했었다가 결혼한 그 한 순간에 사라진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여기서 결혼한 '한 여자'에게서 '다른 그녀들'의 모습을 발견한다면 좋은 이야기(결론)가 되겠지만, 대체로 양다리의 녀석들은 그런 눈을 가지긴 힘들다. 그런 눈이 있었다면 왜 진작에 한 여자가 아닌 여러여자들을 선택했을까...






이건 나의 개인적인, 연애 경험 '0'에 가까운 웃긴 견해지만, 세상을 보다보면 참 이런 일이 많은 것 같다.

하지만 아닐때도 많겠지..

여튼 문득 갑자기 연애에 대해 생각하다가 떠올랐다.





...물론 남자뿐만이 아닐꺼다. 여자도 마찬가지일테니까..

 

 

2011.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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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를 다친 게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어느 미드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지팡이를 짚고 절뚝거리며 집안을 돌아다닐 수도 있고, 가만히 쪼그려 앉아서 컴퓨터를 하나가 지팡이 손잡이에서 나는 나무냄새를 맡고는 미친년처럼 낄낄거릴 수도 있으니까.
물론 집에서만 그럴 수 있는 거다. 밖에 나가면 목발이라는 녀석이 나의 겨드랑이를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깊은 상처를 내버리니까…. 지팡이가 껴들 틈이 없다. 거기다가 지팡이가 밖에서까지 나를 따라 온다면 더러워질 나의 집은 어떡한가. 지금도 나는 한쪽 발을 쪼그린체로 노트북 모니터를 응시하며 지팡이 손잡이를 코에 갖다대고 있다. 이상한 나무냄새.
그러고는 약 먹는데 절대 먹지 말아야 할 술을 모니터 옆에 놔두고 있다. 먹을려고….
와인. 먹어본지 오래됐다. 맛있는 것도.. 저번에 친구가 생일 선물로 준 와인은 너무나도 달달했다. 정말로 포도 쨈에 물을 탄줄 알았다니까. 그래서 셋이서 쿠키랑 같이 마구 먹어댔다. 포도주스의 달콤함은 있지만, 날카로운 느낌이 없었던 달달한 와인. 오늘은 그걸 그리워하며 새 와인을 땄다.
하지만 역시나 독한 술냄새가 풀풀 난다. 그래도 어디서 들은 건 있어가지고 와인을 따서 잠시 기다린다. 공기랑 접촉을 해야 향이 더 좋고 맛나데나 뭐래나..
그나저나 이 지팡이는 정말 마음에 쏙 든다. 반질반질하게 처리된 손잡이를 코에 갖다대면 이상하게도 그 느낌이 팍! 하고 온다. 코에 모든 오감이 존재하는게 아닌데 부드러움부터 밍밍한 맛까지 전해져 온다. 그래도 씹으면 나무 맛이 나겠지.
어느새 와인 잔을 바라보니 와인을 따르고 싶어진다. 마셔볼까, 아직은 냄새만 독한데 뭐.
그래 마셔보지 뭐. 저번엔 달콤한 꽃내음이 풀풀 나던것도 마셔보니 예상을 깨고 독하기만 했잖아.
이번엔 다를지 몰라. 독한 냄새에 달콤한 맛. 어때? 그러면 정말로 치명적인 무언가가 있을 것 같지 않아?
마셔보니 예상과 다르게 밋밋하다. 독한 냄새는 사라지고 밋밋한 물만 있을 뿐이다. 미지근한 밋밋한 물. 그런데 저번에 뜨거운 정종(사케)을 마셨을 때처럼 뱃속에서 무언가 뜨거운게 올라온다. 그래도 그 정종은 꽃내음이랑 같이 올라왔었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약을 안 먹는 건데 그랬다. 근육이완제? 그딴건 그냥 술을 마시면 되는게 아닌가!
이러다가 너무나도 오래 삶은 고기의 비계처럼 축축 늘어져버리는게 아닌가 싶다. 그러면 곤란한데……. 살이 뭉쳐져 있지 않고 흘러내린다. 그러면 나는 뼈와 핏줄만 댕그러니 남아 있겠지. 어이없는 웃음만 난다.

 

 

 

 2011.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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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manticPanic 2017.10.19 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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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manticPanic 2017.10.19 00:28

“너 아직 초콜릿 못받았지?”

뭐가 좋은지 점순이가 까르르 웃는다.

“…꺼져”

나는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일하던 손으로 점순이에게 꺼져라는 싸인을 보넸다. 그랬더니 가는 기색도 없고 뿐만 아니라, 쌔근쌔근하고 심상치 않게 숨소리가 점점 거칠어진다. 이건 또 뭐냐 싶어서 그 때에야 비로소 돌아다보니 나는 참으로 놀랐다. 우리가 이 동리에 들어온 것은 근 삼 년째 되어 오지만, 여지껏 가무잡잡한 점순이의 얼굴이 이렇게까지 홍당무처럼 새빨개진 법이 없었다. 게다 눈에 독을 올리고 한참 나를 요렇게 쏘아 보더니 나중에는 눈물까지 어리는 것이 아니냐. 그리고 바구니를 집어들더니 이를 꽉물고 초콜릿을 꺼내 집어 던지고 엎어질 듯 자빠질 듯 논둑을 힝하게 달아나는 것이었다.

어쩌다 동리 어른이,

“너 얼른 시집 가야지?”

하고 웃으면
“염려 마세유. 갈 때 되면 어련히 갈라구.”
이렇게 천연덕스레 받는 점순이었다. 본시 부끄러움을 타는 계집애도 아니거니와 또한 분하다고 눈에 눈물을 보일 얼병이도 아니다. 분하면 차라리 나의 등어리를 바구니로 한번 모지게 후려때리고 달아날지언정.

그런데 고약한 그 꼴을 하고 가더니 그 뒤로는 나를 보면 잡아먹으려고 기를 복복 쓰는 것이다. 설혹 주는 초콜릿을 안 받아 먹은 것이 실례라 하면 주면 그냥 주었지 “너 아직 초콜릿 못받았지?”는 다 뭐냐, 그렇잖아도 쏠로라 초콜릿하나가 아까운 심정인데.

땅에 떨어진 초콜릿을 주섬주섬 줏어먹으며 내려간 담날 저녁 나절이었다. 여자에게 받은 초콜릿을 못먹어 굶주린 배를 달래며 산을 내려오니까 어디서 초콜릿을 녹이는 달콤한 냄새가 났다. 이거 뉘 집에서 초콜릿을 달이나 하고 점순네 울 뒤로 돌아오다가 나는 고만 두 눈이 뚱그레졌다. 점순이가 저희 집 봉당에 걸터 앉았는데, 아 이게 치마 앞에다가 조그마한 초콜릿을 올려놓고,

“이놈의 초콜릿! 녹아라, 녹아라!”

요렇게 암팡스레 녹이는 게 아닌가. 그것도 잘 녹이면 모른다마는 아주 초콜릿을 만들지도 못하게 흙을 살금살금 뿌리는 것이었다.

나는 눈에 쌍심지가 오르고 사지가 부르르 떨렸으나, 사방을 휘둘러보고야 그제서 점순이 집에 가득 초콜릿이 있음을 발견했다. 나는 잠시 누그러져서,

“이놈의 계집애! 주지도 않을 초콜릿 왜 흙을 뿌리고 그러니?”

하고 슬쩍 말을 건넸다.

그러자, 점순이는 조금도 놀라는 기색이 없고, 그대로 의젓이 앉아서 무슨 모양을 만드는 듯, 싶더니 녹아라, 녹아라 하고 흙을 뿌리는 것이었다. 이걸 보면 내가 산에서 내려올 때를 겨냥해 가지고 미리부터 초콜릿을 녹이고 있다가 초콜릿도 받지 못한 놈, 너 보란 듯이 내 앞에서 흙을 뿌리고 있음이 확실하다.

그러나 나는 그렇다고 남의 집에 튀어 들어가 그럴꺼면 나나 줘 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형편이 썩 불리함을 알았다. 왜냐하면 말을 하면 할수록 초콜릿이 나에게 돌아오지 않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허나 아무리 생각하여도 나는 초콜릿에 굶주려 있었다.

“아, 이년아! 초콜릿을 아예 버릴 터이냐?”

내가 도끼눈을 뜨고 꽥 호령을 하니까, 그제서야 울타리께로 쪼르르 오더니 울타리 밖에 있는 선 나의 손을 겨누고 정확하게 초콜릿을 내팽기친다.

“에이, 더럽다! 더럽다!”

“더러운 걸 널더러 입때 끼고 있으랬니? 망할 계집애년 같으니.”

하고 나도 더럽단 듯이 울타리께를 힝하게 돌아내리며 점순이가 준 초콜릿을 바라보았다.
……점순이가 준 것은 점순이표 초콜릿 페레로로쉐였다.

 

 

 

 

201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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